'월급 80만원, 비닐하우스 숙소'…양구 필리핀 노동자 90명의 '코리안 드림'은 악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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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근로자 집단 임금체불·중간착취 확인…고용부·경찰 합동 수사 착수


"한국에 오면 돈을 벌어 가족에게 보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지옥과 같았습니다." 강원도 양구군의 한 농장에서 구출된 필리핀 계절근로자 A씨의 떨리는 목소리입니다. 농촌의 고질적인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계절근로자 제도'의 어두운 이면이 강원도 양구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양구군 내 농가에서 일하던 필리핀 국적 계절근로자 90여 명이 고용주로부터 수개월간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불법 브로커에게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간착취 당해온 사실이 드러나 고용노동부와 경찰이 합동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일부 농장주의 일탈을 넘어, 일부 지역에서 계절근로자 제도가 어떻게 '현대판 노예제'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례입니다. 이는 최근 성공적인 상생 모델로 평가받았던 '완도군 사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외국인 근로자 인권 보호 시스템의 근본적인 허점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착취의 전말: 빼앗긴 월급과 존엄성


피해 노동자들의 증언과 시민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처한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1. 임금 착취: 이들은 하루 10시간이 넘는 고된 농사일을 하고도, 최저임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월 80~100만 원 수준의 급여를 받거나, 이마저도 수개월째 받지 못했습니다. 고용주는 "나중에 한꺼번에 주겠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2. 중간착취와 불법 수수료: 이들을 농가에 연결한 브로커는 월급의 30~40%를 '소개비' 명목으로 매달 갈취해 갔습니다. 또한, 숙소비, 식비, 공과금 등의 명목으로 과도한 금액을 급여에서 공제했습니다.

  3. 비인간적인 주거 환경: 이들에게 제공된 숙소는 농사일에 쓰이는 비닐하우스나 낡은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냉난방은 물론 기본적인 위생 시설조차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수십 명이 집단으로 생활해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4. 여권 압수와 감시: 고용주와 브로커는 이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빼앗고, 외출을 통제하는 등 사실상의 감금 상태로 노동력을 착취했습니다.


세상에 알려지기까지…그리고 남은 과제


이 끔찍한 인권 유린 실태는 피해자 중 일부가 용기를 내어 작업장을 탈출, 인근의 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와 주한 필리핀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신고를 접수한 고용노동부 강원지청과 강원경찰청은 즉시 합동수사팀을 꾸려 해당 농가와 브로커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을 분리 조치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지자체 중심의 계절근로자 제도 운영에 대한 중앙정부의 관리·감독 부실입니다. 지자체가 MOU를 맺고 근로자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악덕 브로커가 개입할 여지가 많고, 일단 입국한 후에는 이들의 노동 환경이나 인권 상황을 제대로 점검할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 계절근로자 사업장에 대한 전수 실태조사를 벌이는 한편, 브로커 개입을 원천 차단하고 지자체의 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서두르겠다고 밝혔습니다. '농촌을 살리겠다'는 좋은 취지의 제도가 더 이상 눈물의 씨앗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우리 사회 전체의 철저한 반성과 책임 있는 후속 조치가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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