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처럼, 국민 곁에서"…필리핀 누빈 영사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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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영사 신민철 인터뷰…화려함 뒤 '사명감', AI 시대에도 '사람'이 핵심


흔히 외교관이라 하면 국제회의장에서 국가 정상을 보좌하거나, 화려한 외교 행사를 주관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국민이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든 달려가 그들의 안전과 권익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영웅', 바로 영사들이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3년간 영사로 숨 가쁜 시간을 보내고 현재 가나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신민철 영사는 외교관이라는 직업의 현실과 도전, 그리고 변치 않는 사명감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외교관은 특정 업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필요에 따라 배치되는 공무원"이라며 자신 역시 영사 업무를 '배정받아' 수행했다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업무는 교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직접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보람 큰 현장 업무였다고 회고하며, 국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국민 체감' 외교의 최전선: 필리핀에서의 3년


외교 업무는 크게 정치, 경제, 영사 분야로 나뉩니다. 그중에서도 영사 업무는 사건·사고 지원, 비자·여권 발급, 긴급 구조 등 해외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을 직접 보호하고 지원하는, 그야말로 '국민 체감' 외교의 최전선입니다.


신 영사는 필리핀 근무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군인이 보초를 서는 것은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지만 국민이 직접 체감하긴 어렵습니다. 반면 경찰이 도둑을 잡으면 바로 안전을 느끼죠. 영사 업무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들이 '직접 도움을 받았다'고 느낄 수 있는 일이기에 보람이 큽니다."


특히, 약 10만 명에 달하는 교민이 거주하는 필리핀에서의 영사 업무는 쉴 틈이 없었습니다.


  • 다양한 민원 해결: 단순 비자 발급을 넘어,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린 교민 지원, 자연재해나 분쟁 시 긴급 구조 활동, 필리핀 당국과의 교섭, 교민 사회와의 협력 등 그 범위는 광대했습니다.

  • 코로나19 팬데믹 비상 대응: 그는 "필리핀 정부의 갑작스러운 입국 제한 조치로 수많은 교민이 발이 묶였을 때, 현지 정부와 밤낮없이 협의하여 특별 항공편을 마련하고 무사히 귀국을 도왔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습니다. 이는 예측 불가능한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영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신 영사는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증가, 국제 분쟁 격화, 새로운 팬데믹의 위협 등 영사가 마주해야 할 도전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며 "늘 새로운 방식으로 국민을 보호하고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화려함 뒤의 현실: 한계와 윤리적 딜레마


국민을 직접 돕는다는 보람은 크지만, 영사 업무에는 분명한 한계와 어려움도 존재합니다.


  • 개입의 한계: "때로는 대사관이 개입할 수 있는 법적, 외교적 범위가 제한되어 있어, 도움을 절실히 원하는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가장 안타깝고 힘들다"고 그는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현지 사법 절차 존중 원칙과 자국민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외교관의 고뇌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 높은 윤리적 기준: 외교관은 국가를 대표하는 만큼 높은 도덕성과 윤리적 기준을 요구받습니다. 때로는 국익과 개인적 신념 사이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 '떠도는 삶': 근무지 역시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배치에 따라 수년마다 바뀌기 때문에, 잦은 이주와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 그리고 가족의 희생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AI 시대, 외교관은 사라질까? "핵심은 결국 사람"


인공지능(AI)과 자동화 기술의 발전은 외교관의 업무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신 영사는 "비자 발급과 같은 단순 행정 업무는 상당 부분 자동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국가 간 협상, 위기 상황에서의 국민 보호, 문화 교류를 통한 신뢰 구축과 같은 외교의 핵심적인 역할은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할 영역"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외교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구축하는 과정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미묘한 감정을 읽고, 공감하며, 설득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코로나19 이후 화상 회의가 늘었지만, 그는 "직접 만나 악수하고 눈을 보며 대화하는 것에서 오는 신뢰와 유대감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며 대면 외교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기술은 외교의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일 뿐, 외교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외교관들에게: "두려워 말고 사명감으로 도전하라"


마지막으로 신 영사는 미래의 외교관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습니다. 그는 외국어 실력(특히 영어는 필수, 제2외국어는 큰 강점)과 국제법, 경제학 등 전문 지식 함양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단순한 스펙 쌓기를 넘어, 국제 정세에 대한 깊은 이해와 다양한 문화를 편견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역사를 깊이 공부하고, 국제 뉴스를 꾸준히 접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십시오. 이론 공부도 중요하지만, 실제 국제 문제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자신만의 관점을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는 외교관 선발 시험이라는 높은 문턱 앞에서 망설이는 이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격려의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외교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사명'입니다. 그 길은 때로는 힘들고 외로울 수 있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세상을 무대로 활동하며 느끼는 보람과 자부심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열린 마음과 뜨거운 가슴으로 도전한다면, 분명 의미 있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신민철 영사와의 인터뷰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묵묵히 국익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수많은 외교관들의 노고와 사명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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